수초 트리밍 후 버려지는 싱싱한 수초들, 쓰레기통에 넣기엔 너무 아깝지 않으셨나요? "이걸 뭉쳐서 어항에 넣으면 예쁘겠다" 싶어 일반 흙으로 만들었다가 어항 전체가 흙탕물이 된 경험,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물속에서도 절대 풀어지지 않는 쫀득한 흙의 비밀은 바로 분재용 생명토와 수태의 결합에 있습니다. 오늘은 실패 없는 반죽 비율과 실 감기 노하우를 낱낱이 풀어드립니다.
1. 수초, 버리지 말고 섬을 만드세요
물생활을 즐기는 분들에게 주말은 즐거움이자 노동의 시간입니다. 특히 수초 어항을 운영하다 보면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숙제가 바로 트리밍(가지치기)인데요. 가위질 몇 번에 수면 위로 둥둥 떠오르는 싱싱한 로탈라, 루드위지아, 하이그로필라를 뜰채로 건져내면서 매번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와, 이거 상태 진짜 좋은데... 어디 다시 심을 공간은 없고, 버리자니 너무 아까운데?"
그래서 야심 차게 다이소에서 원예용 배양토나 집에 남은 소일을 가져다가 꾹꾹 뭉쳐서 경단을 만들어 보신 적 있으시죠? 이 정도면 단단하겠지 하고 어항에 퐁당 넣는 순간, 불과 3초 만에 흙덩어리가 사르르 녹아내리면서 맑았던 어항 물은 돌이킬 수 없는 흙탕물이 되고, 수초들은 뿌리를 잃고 유령처럼 둥둥 떠다니는 대참사를 맞이하셨을 겁니다. (솔직히 저도 처음엔 본드를 섞어야 하나, 시멘트를 발라야 하나 별별 고민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ADA사나 전문 아쿠아스케이퍼들의 작품을 보면, 물살이 콸콸 쏟아지는 여과기 출수구 앞에서도 끄떡없이 동그란 모양을 유지하는 와비쿠사(Wabi-Kusa)를 볼 수 있습니다. 도대체 비결이 뭘까요? 개당 3만 원씩 하는 비싼 베이스를 사야만 가능한 걸까요? 정답은 흙의 물리적 점성(끈기)과 천연 철근의 배합에 있습니다.
오늘은 비싼 돈 들이지 않고, 집에서 단돈 몇백 원어치 재료로 만드는 절대 부서지지 않는 와비쿠사 자작 비법을 공유합니다. 딱 이 비율대로만 섞으시면, 망치로 때려도 안 부서질 만큼 튼튼한 수초 섬을 만드실 수 있습니다.
2. 왜 일반 흙은 안 되고 생명토여야 할까?
실패의 원인부터 짚고 넘어갑시다. 우리가 흔히 쓰는 수족관용 소일이나 원예용 상토는 물에 들어가면 입자가 따로 노는 성질이 있습니다. 식물 뿌리가 숨 쉬기 좋게 알갱이 사이사이 공간(공극)이 많기 때문이죠. 하지만 와비쿠사는 물속에 잠기는 흙덩어리 입니다. 즉, 물에 녹지 않고 버티는 강력한 접착력이 필수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구세주가 바로 생명토(Keto Soil)입니다. 이름이 생소할 수 있지만, 주로 난을 돌에 붙이거나(석부작) 분재를 만들 때 쓰는 흙입니다. 늪지대에서 갈대나 식물이 오랫동안 퇴적되어 만들어진 점토질 흙이라 찰기가 어마어마합니다. 손으로 만져보면 마치 밀가루 반죽이나 갯벌 진흙처럼 쫀득거려서 물속에서도 형태가 무너지지 않죠.
하지만 생명토만 100% 쓰면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마르면 돌덩이처럼 딱딱해져서 수초의 여린 뿌리가 파고들지 못하고 질식해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에 수태(Sphagnum Moss)를 섞어야 합니다.
건물을 지을 때 콘크리트 안에 철근을 넣듯이, 수태의 질긴 섬유질이 흙 입자를 꽉 붙잡아주면서 동시에 뿌리가 숨 쉴 공기구멍을 만들어주거든요. 이 두 가지 재료의 조화가 와비쿠사 성공의 열쇠입니다.
3. 실패 없는 베이스 배합 황금 공식
인터넷이나 대형 화원에서 재료를 구하셨다면, 이제 반죽을 할 차례입니다. 대충 눈대중으로 섞지 마시고 제가 수십 번 실패하며 찾아낸 이 비율을 꼭 지켜주세요. 이것만 지키면 실패 확률 0%입니다.
| 재료 | 비율 | 핵심 역할 |
|---|---|---|
| 생명토 | 5 | 형태 유지 및 강력한 접착력 (대체 불가) |
| 수태 | 3 | 결속력 강화(철근 역할) 및 뿌리 보습. *잘게 다져서 사용 필수 |
| 피트모스 (소일 가루) |
2 | pH 조절 및 영양분 공급. 소일 가루로 대체 가능. |
물이 너무 많으면 질척거려서 흘러내리고, 적으면 갈라집니다. 가장 완벽한 상태는 만졌을 때 사람 귓볼처럼 말랑말랑하면서 쫀득한 느낌입니다. 반죽을 야구공처럼 뭉쳐서 바닥에 30cm 높이에서 툭 떨어뜨렸을 때, 깨지거나 갈라지지 않고 철퍽 하고 납작해지기만 한다면 성공입니다.
4. 수초가 빠지지 않는 랩핑(Wrapping) 기술
베이스가 찰지게 준비됐다면 이제 수초를 심을 차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와비쿠사는 핀셋으로 하나하나 꽂는 게 아닙니다. 흙공 위에 수초를 얹고 실로 감아서(Binding) 고정하는 방식입니다.
- 베이스 성형: 흙공 윗부분을 손가락으로 꾹 눌러 오목하게 만듭니다. 마치 빗물이 고이는 웅덩이처럼요. 그래야 수초를 얹었을 때 흘러내리지 않고 자리를 잘 잡습니다.
- 수초 손질: 준비한 유경초(로탈라, 루드위지아 등)는 5~7cm 길이로 자르고, 아래쪽 2cm는 잎을 깨끗이 떼어냅니다. 잎이 흙 속에 묻히면 썩으면서 물을 오염시키고 수초가 빠지는 원인이 됩니다.
- 실 감기 (핵심 기술): 수초 3~5가닥을 한 묶음으로 잡고 흙공 옆면과 윗면에 밀착시킵니다. 다른 손으로 실(모스 코튼 추천)을 팽팽하게 당겨, 수초의 잎을 뗀 줄기 부분을 흙공에 칭칭 감습니다. 팽팽한 텐션을 유지하며 흙공을 돌려가며 감아주세요.
- 마무리: 흙이 드러난 빈 곳은 물에 불린 수태나 윌로 모스(이끼)로 얇게 덮고 다시 실로 감아줍니다. 이렇게 하면 흙 유실도 완벽하게 막고, 나중에 이끼가 자라나 자연스러운 수석 느낌을 줍니다.
5. 바로 넣지 마세요! (입수 전 필수 코스)
다 만들었다고 신나서 바로 어항에 풍덩! 하면 어떻게 될까요? 십중팔구 수초들이 녹아내리거나(Melting), 생명토에서 나온 타닌 성분 때문에 물이 누렇게 변할 수 있습니다. 와비쿠사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일주일의 기다림: 수상엽 적응기]
얕은 접시나 예쁜 수반에 물을 자작하게(흙공 높이의 1/3 정도) 담고 완성된 와비쿠사를 올려두세요. 그리고 윗부분이 마르지 않게 랩이나 비닐을 씌워 습도를 높게 유지해 줍니다. (하루에 한 번 환기는 필수!)
이렇게 1~2주 정도 창가에 두면, 수초들이 뿌리를 뻗어 흙공을 꽉 움켜쥐고 새순을 올리기 시작합니다. 이때가 바로 '입수 타이밍'입니다. 뿌리가 활착 된 와비쿠사는 어항에 넣어도 절대 부서지거나 뜨지 않고 폭풍 성장합니다.
6. 자주 묻는 질문 (FAQ)
Q. 실은 어떤 걸 써야 하나요? 낚시줄? 실?
개인적으로는 모스 코튼(녹는 실)이나 짙은 녹색/갈색의 면실을 추천합니다. 낚시줄은 영원히 썩지 않아서 튼튼하지만, 조명을 받으면 반짝거려서 인위적인 느낌이 납니다. 반면 면실은 1~2달 지나면 물속에서 서서히 녹아 없어지는데, 그때쯤이면 이미 수초 뿌리가 흙을 단단히 잡고 있어서 실이 없어도 형태가 완벽하게 유지됩니다. 가장 자연스럽죠.
Q. 흙공에 하얀 곰팡이가 피었어요. 망한 건가요?
아닙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입니다. 물 밖에서 적응시키는 기간(수상엽 적응기)에는 습도가 높고 생명토의 유기물이 많아 곰팡이가 필 수 있습니다. 보기에 좀 그렇다면 물에 희석한 락스를 붓으로 살짝 발라주거나, 어항 속에 넣으면 곰팡이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생물(새우, 물고기)들의 먹이가 됩니다. 식물 건강엔 문제없으니 걱정 마세요.
Q. 어떤 수초가 와비쿠사에 제일 예쁜가요?
와비쿠사는 뿌리 내림이 빠르고 생명력이 강한 유경초(줄기 식물)가 잘 어울립니다.
• 붉은색 포인트: 루드위지아 슈퍼레드, 로탈라 하라
• 풍성한 초록색: 로탈라 그린, 하이그로필라, 워터코인, 미니 헤어그라스
• 비추천: 뿌리 성장이 느린 나나, 부세 같은 음성 수초나 난이도가 너무 높은 수초(토니나 등)는 실패하기 쉽습니다.
어항 속에 툭 던져 놓은 작은 흙덩어리 하나.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 안에서 수초들이 자라나고 작은 숲을 이루는 모습을 보면, 마치 나만의 작은 행성을 창조한 것 같은 묘한 뿌듯함이 밀려옵니다.
트리밍하고 남은 수초, 이제 아깝게 버리지 마세요. 오늘 알려드린 생명토와 수태 배합법만 기억하신다면, 여러분의 어항은 버려지는 것 하나 없이 순환하는 작은 자연이 될 것입니다. 이번 주말엔 흙 반죽 한번 해보시는 거 어떠세요? 찰흙 놀이하듯 빚는 손맛이 꽤 짭짤하거든요.
